어느 마약 중독자의 고백
👤 victory 📅 2012-12-03 21:27 👁 6,853
한 의존자의 너무 아파서 밖으로 내놓기 어려울 수 있는 고백을 있는 그대로 적어 보려한다.(내 주절거림을 가슴으로 느껴줄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린다.)
어릴 때 기억은 모두 추억으로 다가온다. 부모님과 형제들의 영원할 줄 알았던 그 따스한 가정이란 보호막 안에서 큰 어려움 없이 중등교육까지 받으며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친구들과 몰려다니기 시작하며 이유 없는 반항을 했다. 지금에 돌아보면 너무도 어이없는 반항이었다. (공부하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좋은 친구 사귀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소리도.)
무엇하나 당연하지 않은 말이 아니었건만 그때는 왜 그렇게 듣기 싫었는지. 아니 그 말들이 듣기 싫었다기보다 내 자신이 삐뚤어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단단한 준비를!! 나에게 있어 삐뚤어지는 행동이란 참으로 수준 낮은 가출과 담을 넘어 들어가는 늦은 귀가 그리고 어른들의 말씀엔 무조건 반대로 행동하는 짓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에 대한 결과는 컸다.

내 인생에서 전과는 아주 쉽게 찾아 왔다. 몰려다니며 위세를 떨며 과시하고 비슷한 또래들과는 어김없이 패싸움 했다. 그리고 보복폭력을 일삼으니 어느새 동년배 학급친구들은 하나둘씩 날 피하는 것이 보였다. 학교에서도 전학을 권고하고 계속되는 부모님들 호출에 책상과 의자를 걷어차며 배움과는 담을 쌓는 길을 택했다. 그 다음 찾아온 건 소년법률, 하나둘 쌓여가는 전과 기록과 들락거리며 알게 된 또래의 친구관계.
나는 이제 더 이상 가족과 가정이란 울타리가 없어도 넉넉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미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지루한 생활이었다. 그러다 약물을 가까이 하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 친구들은 다량의 알약을 털어 넣고 이틀이상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 약물이란 러미널, 아티반, 세코널과 같은 알약위주였다. 그 때 나는 투약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대마라는 풀을 가져온 친구권유에 16세에 처음으로 가까이해보았다. 그러나 몽롱하였던 기억과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기에 탐닉하지 않았었다.

드디어 내 나이 20대를 넘어서며 의학적 용어로는 "메스 암페타민" 일반적 용어로는 "필로폰, 히로뽕" 이라는 나와 환상적 궁합을 자랑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각성제를 만나게 되었다. 누구는 백색가루라고 하고 누구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하였지만 나에게는 그만한 친구가 없었다.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부산의 전문 유통판매자였던 후배가 상당량을 ‘형님은 하지 않는 사람이고 입이 무거우니 맡긴다.’하며 나에게 보관을 부탁했다. 그러나 하지 않을 것 같던 내가 투약하는 사람들의 환상적인 경험담에 호기심이 동해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리도 입에 침이 마르게 이야기하고 모두들 목마른 짐승처럼 손에 넣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맡아두었던 투명 비닐봉지에서 성냥대가리만한 크기의 하얀 투명결정체를 1cc주사기에 담고 증류수를 약방에서 사와 희석시킨 후 팔 혈관에 인서트(insert)했다.

그때의 첫 경험은 날 중독의 길로 잡아끌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었다. 내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제 3의 무엇이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기분이 상승되고 세상에서 접해본 적 없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세상을 본 것은 사실이었다. 뒷골이 엄청난 폭발로 뚫리는 듯 한 기운을 느꼈다. 당시 첫 투약의 기분과 느낌을 상상하고 맛보고자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입하여 중독자의 길을 간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변명이다. 중독의 길은 단 한 번의 투약에서 다시 주사기나 히로뽕을 손에 만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장담한다. 여하튼 나에게 필로폰은 다시없는 친구로 다가왔고 나에게 쾌락과 어려운 현실을 도망가게 해주는 유일한 도피처가 되었다. 첫 경험이 모든 중독 의존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라는 걸 안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한 번 두 번 이어지는 투약에서 서서히 여자와의 관계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하루가 언제 시작인지 도저히 짐작 어려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번 투약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자 하루에 두 번 해야 되었고 나중엔 세 번 네 번해야 처음의 그 힘을 얻는 상습 중독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늘중독까지 걸렸는지 주사기에 바늘을 인서트(insert)할 때 세상만사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당당해지고 여유로워지고 괴로운 것, 힘든 것, 해야 할 일들, 특히 가족들과의 시간들이 모두 내 곁에서 멀리멀리 떠나가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라는 망상으로까지 덧입혀지면서 더욱 중독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돈 마련을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아내의 의류가게에서 얻어지는 수입까지 손을 댔고 투약자들의 주변 투약자들에게 알선과 판매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오로지 내 약물구입을 위한 것이었고 오로지 나의 하루를 책임져주는 환락을 위한 행위였지 가족이나 사랑하는 딸아이의 하루를 책임지기위한 돈벌이가 아니었다. 주머니에 생기는 돈은 어김없이 약물을 구입하는데 쓰여 졌다. 구입한 약물은 다시금 내 몸과 다른 사람들의 몸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약물을 팔아 받는 금전은 다시 내 몸에 들어간 약물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밤의 쾌락의 밑천으로 쓰여졌다.

악순환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내와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에는 한 달에 한번정도도 들어가지 않았다. 들른다 해도 옷만 챙겨 입고 가족의 눈을 피해 살며시 빠져나갔다. 밖에 나와서는 자가용을 몰고 번듯한 옷을 입고 주머니에 마약 중계한 돈다발은 넣고 어깨를 으쓱대며 주변의 약물 투약자에게 인사를 받으며 조금씩 나눠 주는 것이 큰 위세라도 되는 듯 착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환락과 쾌락과 방탕의 시간들에 대한 벌은 마약류 법률위반법이라는 죄목으로 두 손에 하얀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잘못했다. 두 번 다시 안하겠습니다. 전 아내와 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인 제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를 갈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검사 판사 재판부에 머리를 조아리고 탄원하며 선처를 구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담요 몇 장 깔고 덮고 잠에 빠진 동료를 바라보며 문득 깬 새벽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난 문득 지난날을 진소할 마음으로 들여다보았다. ‘과연 내가 정말로 가족을 위해 살았던가? 과연 내가 없으면 가정이 무너지게 되는가?’ 아무리 내 변호를 하려해도 ‘넌 인간이 아니야.’ 라는 답만이 돌아왔다.

처음 마약류로 구속되었을 땐 수감된 곳에서 어떻게든 더 좋은 품질의 필로폰을 구할 수 있을까하고 함께 수감되어있는 동료들 중 굵직한 판매전문가를 사귀려했다. 또한 입에 침을 튀기며 과거 자랑을 하는 동료와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사회에서 우리 꼭 연락하고 한번 멋지게 만나자라고 약속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들, 파멸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걸 깨닫는 데 무려 20년 가까이 걸렸다. 마약관련 범죄자들을 사귄 건 누구 탓할 것 없는 나의 선택이었기에 더욱 더 아프게 다가왔다. 지금에야 떠올리기조차 싫어지는 기억들이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여러 사람들을 사귀려고 했는지 …
아마도 그것은 마약 때문이 아니라 내 의지가 왜곡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 victor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2-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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